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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미식 기행 맛보기

[여수 미식 기행 미리 보기] 위로의 맛, 밥도둑의 대명사, 여수 돌게장 / 서용하

과로로 지친 심신을 위로해 준 여수의 맛, 게장 백반

 

게장 백반 상차림 Ⓒ서용하

 

내가 여수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2012년 5월 초였다. 당시 여수 엑스포 방송 기획단 단장으로 일하던 선배와 점심을 먹다가 "와, 여수 엑스포 방송 재밌겠는데요. 엑스포니까 볼 것도 많고, 여수라면 맛있는 것도 많을 거잖아요." 하고 말해 버렸다. 그 선배는 함께 일할 PD를 애타게 찾고 있었는데, 여수에서 반년을 일하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수라는 말에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내가 덥석 미끼를 문 것이다.

여수 엑스포 방송 일은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방송에 대한 부담도 커져 갔다.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만의 해소 방법. 바로 맛집 찾기다. 아침 방송을 마치면 오전 7시. 식사를 하기 위해 스태프들과 함께 어딘가로 가야 했다. "아무 곳이나 갈 순 없지."(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대사.)

이곳저곳 시도한 끝에 찾아낸 메뉴가 바로 게장 백반이다. 사실 처음 먹어 보고 놀랐다. 가격이 8000원인데 간장 게장과 양념 게장이 한 사발씩 나오고 따뜻한 국과 조기탕도 함께 나왔다. 인심 훈훈한 아주머니가 달걀 프라이까지 서비스로 준다. 간장 게장과 양념 게장은 짜장면과 짬뽕 같은 관계여서 간장 게장을 먹고 나면 양념 게장이 먹고 싶고 양념 게장을 먹고 나면 간장 게장이 그리워지는데, 그렇게 정신없이 먹다 보면 어느덧 한 사발을 다 비운다. 그러면 바로 리필. 무한 리필 서비스 등장! 감동이다. 그렇게 먹다 보면 밥 두 그릇을 뚝딱 한다. 밥도둑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하지만 여수 엑스포 관람객이 늘어나면서 이 게장집을 찾는 손님들도 많아졌다. 그러자 서비스로 나오던 달걀 프라이는 물론이요, 빈자리 찾기도 어려워졌다. 우리 일행은 다른 장소를 찾아 쓸쓸히 떠나야 했다.

 

여수에서는 돌게로 장을 담근다

 

여수 게장의 게는 꽃게가 아니다. 돌게이다. 돌게는 전라도 사투리로 벌떡게, 민꽃게라고도 한다. 주로 남도 바다에서 서식하는데 껍데기가 딱딱하고 적갈색을 띤다. 돌게는 사계절 먹을 수 있지만 알을 품는 시기인 봄이 제철이다.

돌게는 크기가 꽃게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살이 많고 먹기 좋지는 않다. 다만 신선한 상태에서 먹으면 달고 감칠맛이 있다. 꽃게와 비교하면 가격 대비 효율이 뛰어난 것이다. 꽃게장이 1인분에 2~3만 원 하는데 돌게장은 꽃게장의 3분의 1 수준 가격이니 여수에서 인기다.

돌게장을 '벌떡 게장'이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부르게 된 연유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빨리 즉시 '벌떡' 먹어 치워야 한다고 그렇게 부른다는 설과, 살아서 벌벌 기는 것을 탁탁 끊어 담갔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는 설이다.

돌게로 장을 담글 때는 보통 여러 조각으로 토막을 내는데, 크기가 크지 않을 경우에는 통째로 사용하기도 한다. 돌게를 간장에 재워 하루나 이틀 정도 두면 신선하고 달콤한 게장을 즐길 수 있다.

 

간장 게장 Ⓒ서용하

 

발효 음식의 꽃, 게장

 

최근 발효 음식이 인기다. 발효 음식에 균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가 속속 발표되고 있어서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항생제 치료를 받고 있는 3336명을 대상으로 한 28가지 조사를 분석한 결과 익균인자를 통한 예방 치료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효과적이라는 하버드 의대의 보고도 있었다. 식탁의 상당 부분을 발효 음식이 차지하는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평소대로 식사만 해도 건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남도의 기가 막힌 발효 음식들 중에서 내 입맛을 깊이 사로잡은 것이 바로 간장 게장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게장 담그는 방법이나 사용하는 게의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 충청도나 전라도에서 먹기 시작했다는 꽃게장은 게장의 '대표'이다. 경기도에서는 참게장이 유명하다. 부모님 고향이 경기도라 참게장을 자주 먹었다. 어렸을 때는 참게장의 맛을 잘 몰랐는데, 내가 당시 아버지만큼 나이가 들고 보니 꽃게장보다 참게장이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달달하고, 껍데기를 함께 먹을 수 있어 구수하다.

충청도의 어느 섬에는 '액젓 간장 게장'이라는 것도 있다. 방송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 소개된 것을 보았다. 충청 지역에서는 예전부터 간장 게장에 액젓을 소량 쓰기는 했지만, 액젓 간장 게장처럼 많이 활용하진 않았다. 간장으로만 게장을 담그면 자칫 텁텁한 맛이 날 수 있는데, 액젓 비율을 높이면 짜지 않고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단다. 양조간장 500그램에 액젓 700그램을 넣고 골고루 섞은 후 손질한 꽃게 서너 마리를 담가 냉장고에 넣고 2~3일간 숙성시킨다. 국물만 따로 걸러 내어 5~10분 끓인 다음 다시 꽃게를 담가 사흘을 더 숙성하면 액젓 간장 게장이 완성된다. 이렇게 하면 게 특유의 잡내와 비린 맛을 줄이면서 바다 내음 풍미가 더해진다. 또 국물이 투명해져 깔끔해 보인다.

 

여수에서는 게장을 어떻게 담글까?

 

여수 봉산동 게장 골목 Ⓒ서용하

 

아침에 여수 봉산동 게장 골목을 찾아가면 아주머니들이 여기저기 모여 게장 담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가득 담긴 돌게의 양이 엄청나다. 보통 하루에 한 번, 또는 이틀에 한 번 담근다고 한다.

간장 게장을 담글 때에는 짠맛을 덜고 단맛을 더하기 위해 과일과 양파를 넣는다.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 홍고추, 생강, 마늘을 넣고 좋은 콩으로 만든 간장을 달인다. 맛 좋은 간장은 달일 때부터 냄새가 가볍고 부담이 없다. 달인 간장을 식혀 돌게에 흐르게 둔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나면 간장만 걸러 다시 달인다. 그러고 나서 그 간장을 돌게에 따른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하면 게의 감칠맛이 간장 속에 스며들어 향긋한 간장 게장이 완성된다. 요즘은 풍부한 향과 맛을 내기 위해 레몬과 한약재를 넣는 경우도 있다.

양념 게장을 만들 때에는 고춧가루와 배, 양파, 생강, 마늘 등을 갈아 넣은 뒤 통깨, 참기름과 버무린다. 한나절이 지나면 먹을 수 있고, 고유의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을 잃기 전에 즐기려면 2~3일 안에는 먹어야 한다. 너무 오래 보관하면 삭아 버려 맛도 없고 상하기도 한다.

사실 여수만의 특별한 게장 담그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참기름을 많이 쓰고 감초나 올리고당을 사용해 단맛을 돋우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서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