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미식 기행 맛보기

[여수 미식 기행 미리 보기] 바다의 푸아그라, 삼치 선어 회 / 손현철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11. 17:00

여수 동해선어의 삼치 선어 회 Ⓒ손현철

 

서민의 밥반찬 삼치, 회로도 국으로도 구이로도 김치로도 먹는다

 

삼치는 농어목 고등엇과 물고기로 크기는 고등어보다 훨씬 크다. 서민의 밥상에 반찬으로 오르던 생선 치고 덩치가 삼치만 한 놈이 드물다. 꽁치나 조기는 한 마리 통째로 구워서 식탁에 올리는 반면 삼치는 그 큰 몸을 여러 토막 내서 굽거나 졸여야 한다. 길이가 1미터는 돼야 삼치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크기가 작은 삼치는 아예 이름도 다르다. 전라도에선 작은 놈을 '고시'라고 부른다.

우리 조상들은 삼치를 어떻게 먹었을까? 구이와 조림은 기본일 것이고 뭔가 색다른 요리법은 없었을까? KBS에서 방영하는 「한국인의 밥상」 '대물이 돌아왔다! 거문도 삼치' 편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우리나라에도 중국이나 일본에 못지않은 삼치 요리법이 있는 걸 알고 흐뭇해졌다.

여수에서 배로 두 시간 반 걸리는 거문도. 오래전 주변 바다에 삼치가 머무는 겨울 내내 어선들이 넘실댔다. 일본으로 수출할 만큼 엄청난 물량이 잡혔다. 인근 주민들은 1970년대의 삼치 호황을 행복하게 누렸다. 삼치가 넘치니 요리법도 다양해졌다.

싱싱한 삼치를 회로 먹는 것은 기본. 봄이면 섬에 지천으로 널린 쑥을 넣고 삼칫국을 끓인다. 전날 약주를 과하게 한 남편이 간을 해독할 수 있도록 엉겅퀴를 넣고 삼치 해장국을 준비한다. 굽는 방식도 일본과는 다르다. 한 달간 꾸덕꾸덕하게 말린 삼치에 양념장을 발라 숯불에 굽는다. 중국 산둥 성처럼 만두도 빚는다. 삼치 살을 다져서 두부, 쑥과 버무려 완자까지 부친다. 그야말로 삼치의 성찬이다.

더 놀라운 건 삼치로 김치까지 담근다는 것이다. 어린 삼치를 토막 내고 푹 끓여 육수를 만든다. 거기에 찹쌀가루를 넣고 풀을 쑨 뒤 파, 마늘, 고춧가루 양념, 무채를 섞어 김치 속을 만든다. 천일염으로 절인 희멀끔한 배추 줄기에 걸쭉한 김치 속을 척척 쑤셔 넣는다. 그렇게 며칠을 묵히면 삼치 진국이 배어 들어간 김치가 익는다. 한 잎 쭉 찢어 입에 넣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어떤 다른 반찬이 필요하겠는가? 이런 김치를 담가 먹는 건 삼치를 옆에 끼고 사는 섬사람들만의 특권이다.

방송을 보고 나서 부러운 마음에 며칠간 입맛을 다셨다. 거문도까지 갈 엄두는 안 나고 또 간다 한들 여염집에서 해 먹는 삼치 김치를 어디서 맛볼 수 있을지도 감감했다. 그 대안이 여수였다. 그래, 여수에 가 보자. 삼치 회라도 먹어 보자.

 

1미터가 넘는 커다란 삼치 Ⓒ손현철

 

입안에서 고소하게 녹아내리는 삼치 뱃살, 마치 푸아그라 같다

 

함께 내려간 동생 가족과 유명한 선어 횟집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한 접시에 6만 원 하는 선어 회에는 철에 따라 자연산 광어, 병어가 함께 오른다. 그 가운데 주연은 단연 삼치. 주방에는 돌산도 끝 임포항에서 잡힌 삼치가 얼음 포장 속에 누워 있다. 반쯤 냉동된 삼치는 분명 죽었건만 속살은 잠시 가수면(假睡眠) 상태다. 솜씨 좋은 주방 칼잡이가 1미터도 넘는 큰 놈을 등뼈를 중심으로 수평으로 반 가른다. 이등분된 몸통을 다시 반으로 길게 자른 뒤 사선으로 칼질한다. 광어야 워낙 납작한 놈이라 살을 얇게 뜰 수밖에 없다. 반면 삼치는 몸집이 제법 커서 삼각형으로 알맞게 자르면 접시에 세워 놓을 수도 있다.

자연산 광어회와 함께 삼치 회가 접시에 수북이 담겨 나왔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색상이다. 연한 주황색의 연어 살, 붉은 참치 살과 달리 삼치 살은 은은한 연분홍빛이다. 지방이 많은 배 쪽으로 갈수록 분홍빛이 진해진다. 살점과 살점 사이의 결이 굵고 그 사이도 넓어서 시원시원해 보인다.

삼치 뱃살 한 점을 집어 입안에 넣어 봤다. 아직 냉기가 남아 있다. 서양식 얼음과자 셔벗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처럼 혀와 입 안벽이 살짝 얼얼하다. 잠시 후 혀 위에서 체온에 데워진 뱃살의 지방이 풀리기 시작한다. 고소하게 녹아내리는 살 조각. 미지근하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서 용해되는 버터 같다. 프랑스에 갔을 때 먹어 본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인 푸아그라 같다. 거위 지방간인 푸아그라는 동물성 비린내가 잔향처럼 남는다. 삼치 뱃살은 생미역에서 연하게 풍기는 바다 향기를 낸다. 참치 대뱃살(오토로)이 너무 기름져 입안에서 허무하게 녹아 버린다면 삼치 뱃살은 육질의 근성을 잃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혀 위에서 저항한다. 낚싯줄을 당기자마자 바로 투항해서 끌려오는 물고기보다 여러 번 파닥이며 제법 뻐근한 손맛을 보게 해주는 물고기가 더 맛난 것처럼 말이다.

 

장인의 회 숙성 솜씨를 맛볼 수 있는 여수 민들레집

 

여수에서 삼치 선어 회로 유명한 집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주인 할머니의 밑반찬과 양념장이 일품인 민들레집이 추천 1순위. 봉산동 게장 골목에 있다. 삼치, 민어, 병어를 한 접시에 내놓는다. 성의 없이 대충 썰어 올려놓은 것 같지만 한 점 입에 넣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장인만이 가진 회 숙성 솜씨다. 양파와 고추를 썰어 넣은 양념간장, 쌈장 모두 훌륭하다. 처음엔 회의 육질을 즐기다가 양념장에 찍어 먹길 권한다.

단점은 독립 공간이 없다는 것. 확 트인 온돌방, 다닥다닥 붙은 밥상에 앉아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단골손님들로 늘 왁자지껄하다. 두 명이서 4만 원짜리 선어 회 소(小) 자를 시키면 삼치, 민어, 병어를 조금씩 맛볼 수 있다. 예약 필수.

구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동해선어는 전망이 좋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2층 건물이라 독립 공간도 있다. 주인이 부리는 배에서 직접 잡은 삼치를 내놓는다. 두껍게 썬 삼치의 빛깔, 담겨 나오는 모양이 좋다. 맛도 훌륭하다. 가격은 민들레집보다 센 편. 차분한 분위기를 원하면 가 볼 만하다.

회든 구이든 삼치를 원 없이 먹고 집에도 싸 갈 생각이라면 중앙동 이순신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중앙 선어 시장으로 갈 것. 도매와 전국 택배 판매를 주로 하는 큼직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집집마다 큼직한 삼치를 얼음에 재어 놓고 판다. 1미터가 넘는 큰 놈을 실한 가격에 살 수 있다. 한 마리 사면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내서 아이스박스에 포장해 준다. 추천받은 근처 식당에 가져가서 회를 뜨거나 구워서 먹고 남는 것은 싸 간다.

 

여수 민들레집 삼치, 병어, 민어 회 Ⓒ손현철

 


 

—손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