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미식 기행 미리 보기] 여수 10미(味) 중 으뜸, 서대 회 / 홍경수
여수 구백식당 서대 회 Ⓒ홍경수
여수 사람들이 손님에게 꼭 대접하는 최고의 음식, 서대 회
여수에 가면 꼭 맛보아야 하는 10미(味)가 있다. 서대 회, 게장 백반, 한정식, 굴구이, 장어, 군평선이, 하모, 생선회, 갓김치, 꽃게탕(여수시 홈페이지 기재 순)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히는 음식이 바로 서대 회다. 여수 사람들 대부분이 찾아오는 손님에게 예를 갖추어 서대 회를 대접한다.
서대는 한국 서남해, 일본 남해, 동중국해 등지에 서식하며 수심 70미터 이내의 내만이나 연안의 얕은 바다, 특히 개펄과 모래가 섞인 바닥에 주로 산다. 태어날 때부터 서대의 눈이 한쪽으로 몰려 있는 것은 아니다. 1.6센티미터 길이 정도로 자라면 오른쪽 눈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변태를 마치고 바닥에 붙어살기 시작한다. 서대의 영양 성분은 가자미와 비슷하지만 지방이나 당질 함량이 적어서 더 담백하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다른 어류에 비해 수용성비타민 함량이 높으며 그중 비타민 B1, B2가 특히 많이 들어 있다. 칼륨과 인이 풍부하여 혈압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서대와 관련한 식담(食談)도 많다. "5 농 6 숭이요, 5•6 서에 준 사철이라."라는 말이 있다. 농어는 5월, 숭어는 6월, 서대는 5월과 6월, 준치는 사철 맛이 좋다는 뜻이다. 여수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에선 최고의 여름 별미 가운데 하나로 서대를 친다. 남도 사람들은 "서대가 엎드려 있는 개펄도 맛있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남도 지방 제사나 행사의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생선이기도 하다.
건조 중인 서대 Ⓒ손현철
여수 서대 회 맛의 비밀, 천연 막걸리 식초
그럼 서대 회의 맛을 보자. 서대 회의 새콤달콤한 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서대 회는 서대를 가늘게 썰어 막걸리 식초와 고추장 양념에 무친 회로, 비린내가 적고 담백한 맛이 빼어나다. 발효한 막걸리 식초를 사용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막걸리 식초는 일반 식초와 달리 주정 냄새가 살아 있으며, 맛이 부드럽고 풍부한 편이다. 좀 더 둥글둥글한 맛이라고 할까. 유산균 식초에 속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다. 막걸리 식초로 서대 회를 무치면 달콤새콤한 맛이 더 커지고 더운 날씨에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수로 시집 온 여자들은 먼저 막걸리 식초를 만드는 법부터 배웠다. 애써 만든 막걸리 식초는 부뚜막 위에 올려놓고 신주 단지 모시듯 했는데, 막걸리 식초 맛이 변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막걸리 식초를 정성껏 관리한 것은 바로 서대 회를 위해서였다.
막걸리 식초 Ⓒ손현철
터미널 앞 식당은 별로라는 편견을 깨다, 여수 구백식당 서대 회
여수의 서대 회 맛집이라는 곳을 여러 군데 갔으나 실망스러웠다. 이런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 준 곳이 여수 연안 여객 터미널 앞 구백식당이다. 여수 대표 식당이니 좀 다르겠지 하는 기대 반, 매스컴에 많이 소개된 식당 특유의 거품은 아닐까 하는 의심 반, 반신반의하며 음식을 시켰다.
따순 밥과 진한 된장국이 담긴 냉면기, 여섯 가지 밑반찬이 조금씩 담긴 반찬기가 네모난 은색 쟁반에 놓여 나왔다. 메인 요리인 서대 회는 깻잎과 상추로 덮고 그 위에 참깨를 듬뿍 뿌려 내놓았다. 깻잎을 들어 올리자 붉은색 서대 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두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약간 비릿했지만 서대 회 특유의 씹는 맛과 고소함이 살아 있었다. 양념이 흥건하지 않고 회에 적당히 배어 있었고 맛도 조화로웠다. 밥을 조금 퍼서 서대 회를 얹어 음미하듯 먹었다.
게다가 서대 회의 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푸짐했다. 1인분을 시켰는데 2인분 이상은 되는 듯했다. 서대 회 아래에 채소가 깔려 있고 그 아래에 다시 서대 회가 있었다. 서대 회와 채소가 겹겹이 놓인 2층 구조였다. 서대 회가 너무 매콤하다 싶을 때 함께 나온 토장 시래깃국을 먹으면 금세 중화되어, 전체적인 조합도 훌륭했다.
밥 한 공기를 다 먹었는데도 서대 회가 절반이나 남았다. 배는 불렀지만 밥 한 공기를 추가했다. 냉면 그릇에 밥을 넣고 서대 회를 건져 올리고 참기름을 휘휘 뿌렸다. 고소한 냄새가 폴폴 났다. 서대 회 비빔밥이 새로운 식욕을 자극했다. 비빔밥을 다 먹고는 숟가락에 참기름을 따라 보았다. 100퍼센트 국산답게 국물이 말갛고 향기가 고소했다.
여수 수산 시장에서 맛본 서대조림, 진덤진덤한 양념이 일품
서대는 회로만 먹는 것이 아니다. 반건조한 서대를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조려 먹을 수도 있다. 2013년 여름 여수 여행에서 서대조림을 맛보았다. 여수 수산 시장의 밥집 나리네에 가서 서대조림을 부탁했다. 주인아주머니가 식당 앞 건어물 가게에서 반건조 서대 몇 마리를 사 와서 요리를 해 주었다. 갈치조림과 비슷한 양념에 서대를 조려 주어서 밥을 몇 그릇이나 비웠다. 서대 살이 적다지만 그날 우리는 서대 조림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진덤진덤한 조림 양념이 잘 밴 쫀득한 서대조림은 별미였다. 서대는 회부터 구이, 조림, 찜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 여수의 대표 생선임에 틀림었다.
서대조림 Ⓒ손현철
—홍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