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미식 기행 미리 보기]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여수의 맛, 장어탕과 장어구이 / 서용하
여수 상아식당 장어탕 Ⓒ서용하
여수 장어탕과 장어구이, 전혀 새로운 장어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나는 장어를 사랑한다. 맛있고, 몸에도 좋고, 왠지 관능적이다.
일본에 출장 갈 때면 종종 가는 장어집이 있다.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의 후미진 골목에 장어 머리, 꼬리, 껍질, 특수 부위 등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방송 취재를 도와주던 현지 코디네이터가 자랑스럽게 추천한 집이었다. 좁은 집을 가득 메우는 장어 굽는 냄새. 살짝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반겨 주던 모습. 작은 접시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 장어 요리.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면 그 맛에 절로 술이 들어간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장어의 맛이다. 정확히 말하면 뱀장어의 맛이다. 장어라면 뱀장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엄청난 장어 맛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수 엑스포 방송단에서 일할 때 현지에서 맛보았던 장어탕과 장어구이 덕분이다.
여름에 먹으면 일품, 붕장어(아나고) 회
여수 장어탕과 장어구이는 주로 붕장어를 사용한다. '아나고'라는 일본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붕장어를 잘 먹지 않았는데, 일제강점기 이후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즐겨 먹기 시작했다. 특히 그 회를 좋아하여 부산 기장 붕장어 회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붕장어는 특히 여름철에 맛이 좋다. 붕장어에는 가시가 꽤 많다. 손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식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잘 손질된 붕장어를 간장에 엷게 졸인 다음 초밥이나 덮밥을 만들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보통 일본 가정식 집에서 흔히 만나는 장어덮밥이 붕장어로 만든 것이다.
붕장어 Ⓒ손현철
서울에서는 맛보기 힘든 여수만의 맛, 우거지 통장어탕과 장어구이
여수에서 유명한 장어탕집 중 한 곳이 7공주식당이다. 1996년 초에 맛집 기행 프로그램을 촬영하기 위해 이 집을 찾은 적이 있다. 초짜 PD였던 나는 다짜고짜 여수 시청에 전화해 "여수에서 가장 맛있는 게 뭔가요?" 하고 물었다. "해산물 한정식과 회."라는 답이 돌아왔다. "너무 일반적인데 뭐 다른 것 없나요?" "그럼 장어탕이죠, 교동 시장 근처에 칠공주 식당이라고 있어요."
보통 식당 주인들은 방송국 사람들을 환영하는데 칠공주장어탕 주인아주머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겨우 설득해서 찾아가 본 집이다. 맛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젊은 PD가 찾아오니 주인아주머니는 속으로 '네가 맛을 알아?' 하고 생각했을 것 같다.
칠공주장어탕은 여수의 다른 장어탕집과는 맛이 조금 다르다. 후추를 듬뿍 넣어서 그런 듯한데, 조금 더 달달하고 깔끔한 맛이다.
여수 국동항 Ⓒ서용하
여수 국동항에 가면 장어탕 골목이 있다. 대표적으로 자매식당과 상아식당이 유명하다. 두 곳에서 모두 먹어 보았지만 모두 맛있다.
주메뉴는 우거지 통장어탕과 장어구이다. 장어구이는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두 종류가 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장어를 써서 식감이 고급스럽고 맛나다. 소금구이는 간장을 살짝 바르고 마늘과 쌈장을 곁들여 쌈을 해서 먹으면 좋다. 그중에서도 별미 중의 별미는 장어 머리. 징그럽다 하지 말고 도전해 보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양념구이는 채소에 싸지 말고 그대로 먹는 것이 더 좋았다. 양념 자체의 달달하고 매콤한 맛과 장어의 통통한 살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장어구이를 시키면 함께 나오는 된장국은 장어 뼈를 넣어 푹 끓여서 맛이 깊고 진하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장어탕이다. 우거지 통장어탕 1인분에 1만 3000원. 통장어를 크게 잘라 껍질째 끓인다. 우거지의 시원한 맛과 장어의 깊고 달고 단백한 맛이 어우러진다. 장어탕에 청양고추를 넣으면 맛이 배가된다. 다소 느끼할 수 있는 장어탕에 청양고추를 조금 넣으면 칼칼하고 감칠맛을 더할 수 있다.
—서용하